청송소개 - 청송사진연구회

청송소개

연혁

청송군의 영역이 현재와 같은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비교적 근래인 1914년이며,

그 이전에는 현재의 청송읍을 중심으로 한 청기현, 부동면과 부남면 일대의 송생현, 현동면, 안덕면, 현서면 일대의 안덕현, 파천면과 진보면 일대의 진보현 등 4개소의 영역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현재의 청송이라는 지명은 조선초 청기현의 청(靑)과 송생현의 송(松)을 합하여 얻게되었다고 하며, 안덕현을 속현으로 하여 일찌기부터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구성되었으며, 일제 강점기에 진보현과 합하여져 현재의 구성을 이루게 되었다.

 

청기현은 현 청송읍의 서부 일원이며 고구려의 영역으로 청기현(靑己縣)이라 하였으며, 신라 경덕왕16년(757)에 전국의 군, 현의 명칭을 개명할 때 적선현(積善縣)이라 칭하고 야성현(野城縣, 영덕)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태조 당시에는 부이(鳧伊)라 칭하다가 후에 운봉(雲鳳)이라 했으며 성종 원년(982)에 청부(靑鳧)로 다시 환명(還名)하였다.

조선조 태조3년(1394)에 진보현과 합현하였고, 세종 1년(1419)에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의 관향인 연유로 청보군(靑寶郡)으로 승격하고 진보현과 분리하였다.
세조(世祖) 때 송생과 안덕을 병합하여 청송도호부(靑松都護府)로 승격하고 9면 57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폐합에 의해 진보군을 합하여 오늘의 청송군에 이르렀다.

 

송생현은 현 부남면과 부동면 영역이며, 고려 현종9년(1018)에 예주(禮州-영덕)에 속했으며, 인종 21년(1143)에 감무를 두었다.
조선 태조 때 안덕현과 합하였으며, 세종 때 청기현과 합하여 청송군의 영역이 되었다.

 

진보현은 현 진보면과 파천면 일부, 그리고 영양군 일부의 영역이며, 칠파화현(漆巴火縣)과 조람현(助攬顯)의 2개의 현으로 있었는데, 경덕왕(景德王)때 칠파화현은 진보(眞寶)로 개명하여 문소군(聞韶郡, 의성)의 영현이 되고, 조람현은 진안(眞安)으로 고쳐 야성군(野城郡, 영덕)의 영현이 되었으며 조선조에 와서 칠파화현과 조람현을 합하여 진보현으로 개칭했다.

태조 3년(1395)에 청송군과 합병했다가 세종 19년(1437)에 다시 분리하여 소재지를 진안에서 현재의 광덕(廣德)인 신한(新漢)으로 이읍하였다가 3년 후 다시 진안으로 환읍하였다.

조선조의 진보는 현재 영양군 입암면 일부와 석보면, 영덕군 지품면 일부, 그리고 청송군 파천면 일부를 포함하여 상리면, 하리면, 동면, 서면, 남면, 북면 등의 6개 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856년 청송군 진보면으로 되었다가 대한제국 광무 원년(1897)에 현감을 군수로 개칭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의해 진보군이 폐지되고 진보군 지역 중 하리면(下里面)의 영역인 월전(月田), 각산(角山), 신한(新漢), 동부(東部), 서부(西部), 대곡(大谷), 이촌(理村), 후평(後坪), 읍내(邑內), 합강(合江), 율리(栗里), 금곡(金谷), 기곡(基谷), 참막(站幕)의 14개 동을 중심으로 상리면의 영역이었던 괴정(槐亭), 신촌(新村), 남각산(南角山), 고현(高峴), 시량(時良)의 5개 동과 서면의 영역이었던 기곡(基谷), 세장(世長), 추현(楸峴)의 일부와 안동시 임남면 상기(上技) 일부, 임동면 고천(高川)의 일부를 합하여 괴정, 신촌, 고현, 시량, 월전, 각산, 진안, 이촌, 광덕, 후평, 합강, 금곡, 기곡, 세장, 추현의 15개 리로 하고 면소재지는 진안에 두었다.

 

안덕현은 현 안덕면, 현동면, 현서면의 영역이며, 고구려 영역으로 이화현(伊火縣-세종실록지리지 혹은 伊火芳縣-신증동국여지승람 혹은 伊火兮縣-해동지도)이라 하였으며, 신라 경덕왕 16년에 연무현(緣武縣)이라 개칭되어 곡성군(지금의 안동시 임하면)의 영현이 되었으며, 신라 진흥왕 5년에 지방군사조직인 이화혜정이 있었다.

고려 태조 23년에 안덕현으로 개칭하였으며 현종 9년에 안동에 속하였으며, 공양왕 2년에 감무를 두었다.

이후 조선 태조 때 송생현과 합하였다가 세종 때 청송군의 속현이 되었으며, 세조 이후 청송도호부 속현으로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통폐합때까지 유지되었다.

조선시대 안덕현의 구성은 현내면(縣內面) , 현동면(縣東面), 현서면(縣西面), 현남면(縣南面), 현북면(縣北面)의 5개 면으로 구성되어 현재의 안덕면, 현동면, 현서면의 영역과 대동소이하다.

1914년 일제에 의한 군면리통폐합에 의해 현북면(縣北面)의 영역이었던 노래동(老來洞, 상노래와 하노래), 근곡동(斤谷洞), 감포동(甘浦洞), 만안동(萬安洞), 지소동(紙所洞), 고와동(高臥洞), 안동부 길안면의 대사동(大寺洞)일부, 니동(尼洞), 동곡동(東谷洞), 신성동(新城洞)과 현내면의 영역이었던 명당동(明堂洞), 장전동(長田洞), 감은동(甘隱洞), 문거동(文巨洞), 현동면의 우질동(牛叱洞)을 합하여 안덕면으로 하고 9개 동으로 개편하였다.